2009년 02월 20일
<아웃사이더>(콜린 윌슨) 머리말 & 2장
콜린 윌슨, 『아웃사이더』, 이성규 역, 범우사, 1997.
● 머리말: 아웃사이더, 그 후 20년
책을 쓰겠다는 계획의 뒤에 숨어 있는 주요한 힘들 가운데 성(性)이 하나임을 의심할 수 없었다(11). 나의 소설 《어둠 속의 의식》에서 소름은, 우유를 들고 난간을 지나가는 어떤 여자의 치마를 올려다본다(12). 내게 성적 욕구는 물에 대한 깊은 동경을 생각나게 해주었다(13). 유명해지고 나서 얻은 가장 큰 보너스는 아마도 성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의 증대였을 것이다(21).
이 책의 출간 직후 언론은 내가 적어도 사르트르와 까뮈만큼이나 중요한 실존주의자며, 영국에서 성장한 실존주의자라는 점을 확신시켜주었다(19).
이제 나는 《아웃사이더》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안다. 내가 마침내 진지한 삶의 방식을 취하게 됐고, 내가 어린 시절의 지속적이고 엉망진창인 세월을 보내고 자의식으로 가득 찬 10대의 번민을 겪은 후 마침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멈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26).
● 제 2장. 무가치한 세계
‘아웃사이더’는 실존주의적인 말로 자기를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그에게 중요한 단 하나의 구별은 ‘존재와 무’이며, “죽음, 그것이야말로 모든 관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바르뷔스; 1장 참조)고 하는 그것이다(54).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감정 문제에 무관심하다(57). 하지만 처형 전야에 그는 일종의 깨달음을 얻는다. 뫼르소의 무관심의 이유는 “모든 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그의 비현실감에 있었다(59).
뫼르소는 늦었지만 자유의 의미를 깨달은 듯한데, 이 자유는 비현실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사르트르는 뫼르소의 이 깨달음을 요약하여 후에 “자유라는 것은 공포다”고 공식화했다. “그가 가장 자유롭게 느꼈던 것은 전쟁 중에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끊임없는 배반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사르트르, 〈침묵의 동맹〉) 자유는 ‘의미의 강렬함’이며, 살아남으려 하는 의지를 인간에게 불러일으키게 하는 극한상황에서 나타난다(60).
카프카의 작품들에서 주인공은 “인생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된다면, 자! 이것은 어때?”라고 하는 운명의 철퇴를 맞는다. 그 명령은 “너의 자유를 요구하라”는 것 같다. 자유를 요구할 수 없는 인간에게는 돌연 재판과 처형을 받게 되거나 심지어는 하등동물로까지 전락할 위험에 처한다(60-61).
뫼르소의 깨달음은 너무 늦었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병사의 고향》에서 크레브스는 다르다. 그는 전쟁 체험에서 자유의 감정을 획득했지만, 전쟁터에서 돌아온 자신의 생활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단지 하나, 남자로서 할 수 있는 단지 하나의 일”을 제외하고서다. 자신의 일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을 보았다는 것, 그것이 자유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서 제이크 번즈의 상황, 생식기에 받은 상처는 실현될 수 없는 자유의 비극을 상징한다(63).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는 공포다”, “자유는 위기다”라는 말에 헤밍웨이는 동의한다. 다만 헤밍웨이는 영웅적인 것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데, 그는 낚시질에서, 미시간 숲속의 사냥에서, 날마다 자신의 운명을 거는 투우사에게서 그것을 찾는다(64).
《무기여 잘 있거라》 이후 헤밍웨이의 작품에서는 초기의 발랄함은 없어지고, 차가운 느낌을 피할 수 없다(65). 프레드릭 헨리는 간호사 캐서린에게 일종의 거짓말로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헨리가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깨달은 것은 나중에 부상당한 그가 밀라노의 병원에 누워있을 때다. 절정은 캐서린 바클리가 아이를 낳다가 죽는 대목이다(67). 헤밍웨이는 체내가 싸늘하게 갠 것 같은 느낌을 주던 이 체험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다(68).
헤밍웨이의 해결방법은 사냥감을 찾거나 심해에서 낚시질을 하는 것, 내란이 발생한 에스파냐에 참가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그가 문제의 근원에 접근할 수 없었다는 것을 폭로한다. 그렇지만 ‘아웃사이더’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룬 것이 있다(67). 캐서린의 죽음에 의하여 궁극적인 부정이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는 기분은, 세상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기분에 비하여 성숙한 깨달음이다. 남아있는 유일한 가치는 용기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는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68). “대부분의 사람은 인간답게가 아니라 동물처럼 죽는다.” “지금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이른바 휴머니스트의 죽는 모습이다. 그들의 고귀한 퇴장을 보고 싶은 것이다(69-70).”
헤밍웨이의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문장은 그의 작품에서 종교적 이상에 가장 가까운 문장이지만, 그보다는 “잃을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주제가 오래도록 증명되고 있다. 그럼에도 인생이야말로 유일한 가치라고 그는 주장한다(70).
까뮈는 인간의 자유 문제에 대한 사회학적 해답을 용인할 수 없었다. 그는 그것이 불가능하고 결론짓는다. 이 때문에 ‘참여’ 이론의 사르트르와 심하게 충돌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는 헤밍웨이에게 불만을 품었다. 하지만 자유의 문제는 사회 문제가 아니다(72).
할리 그랜빌바커의〈숨겨진 생명〉에서, 전전(戰前) 정계에 있었던 에반 스트로드는 당의 지도자와 다투고 은퇴했는데, 전쟁 후 당이 그의 복귀를 바라고 있다. 올리버 곤틀렛은 의아해한다. 스트로드 정도의 인물이라면 어떤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74). “빌릴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기대할 것도 없는 대의명분의 힘, 그것은 그들[현실 정치가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오. 그것은 숨겨진 생명으로부터 솟아나옴에 틀림없소(76).” 전쟁 전 스트로드와 연애를 했던 여자 조안 웨스트베리는 “그런 희망이 없는 회의에서 벗어나세요”라고 말한다(77).
아웃사이더는 지금까지 알았던 어떤 현실보다도 고차의 현실을 잠깐 본다. 그러나 곧 그것을 잃어버리고 차선의 것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77). 올리버는 “그러한 성공은 마음만 먹으면 간단한 겁니다. 그렇지만 에반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물의 핵심에 파고들려고 했던 거예요. 그것은 완전히 죽어버린 사물의 핵심”이라고 말한다(78). 올리버의 해답은 아주 간단하다. 파멸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진정한 파괴입니다(79).”
올리버나 스트로드에게는 세간에 대한 파스칼적인 멸시, ‘신 없는 인간의 비참함’을 꿰뚫어볼 힘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랜빌바커에게,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는 세간을 멸시하는 인간으로서의 성격을 보여주는 장면을 계속해서 고안해내는 일 이외에는 거의 없다(80). “주여, 이제 다 끝났습니다. 저의 목숨을 거두어주소서(82).”(스트로드)
우주에 있어서 아무리 고상하고 훌륭한 사상을 말했다 하더라도, 만약 그가 저녁이 먹고 싶어졌다거나 버스에서 아이가 울면 화가 나기도 한다면, 그러한 사상은 모두 소멸해버리는 것이다. 인간은 사소한 일에 얽매여 있다. 스트로드도 올리버도 과민할 만큼 이억세 마음을 쓰고 있다.(그러나 그것에 대하여 어떤 행동을 할만큼 그들은 강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약하기 때문이다(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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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2/20 20:55 | 에티카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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