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21일
프랑켄슈타인
Mary Shelley,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1818)
1. 들어가며
『프랑켄슈타인』의 초판이 출간된 지 13년이라는 기간이 지난 뒤에 쓰여진 저자 서문(Author's Introduction; London, October 15, 1831)에서 메리 셸리는 작품과 관련하여 중요한 언급들을 남기고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작품의 최초 아이디어가 떠오른 순간에 대한 묘사다. 이 작품의 착상과 관련하여 난관에 봉착했을 때 "저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비참함"(the greatest misery of authorship, ⅹⅹⅲ-ⅳ)의 순간, 셸리는 일순간 어떤 깨달음에 직면하였음을 술회한다.
인간의 어떤 노력이든 이 세계를 창조한 조물주의 엄청난 메커니즘을 조롱하는 결과가 된다면 그 무엇보다 무섭지 않을까.
Frightful must it be, for supremely frightful would be the effect of any human endeavour to mock the stupendous mechanism of the Creator of the world.(ⅹⅹⅴ)
초판과 비교해 보았을 때 셸리의 주변 정황 또한 많이 변해 있었다.
내가 이 작품에 애착을 느끼는 것은 행복했던 시절, 죽음과 슬픔은 그저 단어일 뿐 내 가슴에서 현실적인 울림을 찾아볼 수 없었던 시절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그 몇몇 페이지에는 내가 혼자가 아니었던 때, 그리고 이제는 다시 보지 못할 나의 동반자가 이 세상 사람이었던 때, 많이 걷고 많이 돌아다니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I have an affection for it, for it was the offspring of happy days, when death and grief were but words which found no true echo in my heart. Its several pages speak of many a walk, many a drive, and many a conversation, when I was not alone; and my companion was one who, in this world, I shall never see more.(ⅹⅹⅵ)
초판에는 그녀의 남편 P. B. 셸리가 쓴 머리말(Preface, 1818)도 수록되어 있는데 흥미로운 구석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그는 이 작품으로 인해 초래될 가능성이 있는, 생명탄생 문제를 둘러싼 첨예한 도덕적 쟁점에 대하여 나름의 변을 남기고 있다.
솔직히 나는 이 소설이 담고 있는 감상이나 등장인물들이 지닌 도덕적 경향들이 옥자들에게 어떤 식의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절대 무심하지는 않다. 그러나 오늘날의 소설들처럼 독자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효과를 피하려고 하면서, 가정적 애정의 따스함과 보편적 선의 미덕을 보여주는 한도 내에서 많은 신경을 썼다. 등장인물과 주인공의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뿜어 나오는 견해들이 나의 평소 신념에서 우러난 것으로 오해받는 일은 전혀 없었으면 한다.
I am by no means indifferent to the manner in which whatever moral tendencies exist in the sentiments or characters it contains shall affect the reader; yet my chief concern in this respect has been limited to the avoiding the enervating effects of the novels of the present day, and to the exhibition of the amiableness of domestic affection, and the excellence of universal virtue. The opinions which naturally spring from the character and situation of the here are by no means to be conceived as existing always in my own conviction.(ⅹⅹⅶ-ⅷ)
"악령을 쫓는 방법의 선택"에서 장-클로드 카리에르(JEAN-CLAUDE CARRIÈRE)는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은 그 전에 "의사들의 이야기"(9)가 있었음으로 인하여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었다고 말한다. "어둡고 악마적인 지배자로서의 이미지"(같은 쪽)를 가진 의사로 파우스트 박사(Dr. Faust)가 존재했었다면, 곧이어 보다 밝은 이미지의 의사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The Tempest)에 등장하는 프로스페로다. 그런데 "파우스트는 프랑켄슈타인을 예고한다"(10)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카리에르는 『프랑켄슈타인』의 중요한 모티프로 "일종의 기계적 원죄"를 꼽는다. 결국 "창조자는 자신의 꿈 때문에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프로메테우스는 여전히 쇠사슬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무엇보다 근본적인 논점이 제기되는데 "죽는 것은 창조자이고 남는 것은 피조물"이라는 점이다(11). 다시 말해 "인공 생명이 결국에는 진짜 생명에 승리를 거둔다는 사실"(12)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2. "이 괴물은 어디서 왔는가?" (모리스 레비 Maurice Lévy)
『프랑켄슈타인』은 고딕 소설이 아니다. "중세의 성이나 폐허가 된 수도원이 주인공의 여행 배경으로 등장하지 않"(13)으며, "몇몇 비개연적인 사건들을 우연의 탓으로 돌린다면 아무런 유령의 그림자도, 어떤 초자연적 현상도 찾아볼 수 없다."(14) 그것은 공상과학소설의 원조도 아니다. 이는 그저 "비평의 당혹감을 드러내는 안이한 해결책"일 뿐이다. 이 작품에서 논의되는 과학의 수준이라는 것이 사실 "상당히 기초적이고 초보적"이기 때문이다(14). 『프랑켄슈타인』이 가족 소설의 훌륭한 모범이라는 설명도 완전치 않다. "가족과 관계되지 않은 소설이 어디 있으랴?"(14-5) 그렇다고 페미니스트 소설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가 실제로 가부장제적 규약을 전복시킨 것인지 아니면 본의 아니게 재생산한 것인지는 결국 밝혀내지 못했다." 물론 이 작품에서 "남성은 절대로 '생산'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남성은 창조밖에 할 줄 모르는 것"이 비춰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16).
그렇다면 "『프랑켄슈타인』의 해독을 도와주는 다른 무엇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가령 밀턴(John Milton)의 『실락원』을 예로 들 수가 있다. 북극은 "잃어버린 낙원"에 가깝고, 괴물은 사탄과 흡사한 어법을 지닌다. 이름 없는 저 괴물은 "타락한 천사"이지만, 그 이전에 "자신의 창조자에게서 버림받은 '가엾은 악마'다."(16) 한편 "인간들과 그들의 정치 체제"와 관련해서 『프랑켄슈타인』을 바라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작품 속에서 "과학적 추상을 위해 모든 감수성을 몰아낸 이 '일차원적'인 세상"이라는 요소로부터 『프랑켄슈타인』을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산업사회의 살인적인 기능 장애를 예고하는 예언서", 즉 "마르쿠제(Marcuse) 식의 해석을 적용"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17).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의 무엇보다 중요한 특질은 그것이 "이중인물의 이야기"라는 데 있다. "프로메테우스('불을 훔친 자'이자 '창조자')의 신화에서처럼 이중적이며, 창조자-피조물의 쌍처럼 이중적이다."(17) 바흐친적 맥락의 독해도 가능한데 "왜냐하면 『프랑켄슈타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의미의 다중성은 메리 셸리의 이 소설을 바흐친적 용어를 빌면 다중 언어(hétéroglossie)의 대표적인 예로 만들기 때문이다."(18)
"괴물은 이처럼 자유롭게, 즉 모든 해석에 대해 열려진 채로, 모든 신원 확인 시도에 응하면서, '대화적(dialogique)'인 상태로 남아 있다. 나는 그의 괴물성이 무엇인지조차도 확실히 알지 못하겠다."(18) "그의 추함은 우리의 추함일 수도 있다." 그러니 "그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잔인하지만, 그의 잔인함은 우리의 잔인함이다."(19)
3. "괴물은 여전히 어슬렁거리고 있다" (질 메네갈도 Gilles Menegaldo)
질 메네갈도는 이 소설의 부제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에 주목한다. 이와 관련하여 2개의 테마를 가지게 된다고 하는데, 1) "존재를 인공적으로 창조한다는 테마"와, 2) "삶/죽음의 경계 위반이라는 주제"가 그것이다(21-2).
1931년에 함께 영화화된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은 굉장한 성공을 거두게 되고 1930년대부터 프랑켄슈타인 신화는 대중문화의 모든 영역을 침범하게 된다. 그런데 특기할만한 점은 정작 "메리 셸리의 작품은 완전히 잊혀졌다"는 데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제 창조자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으며 "상업적 목적에 봉사하는 상품"이 된다. 다시 말해 『프랑켄슈타인』은 "일종의 자율성을 획득한다." 하지만 "신화는 현재 세계의 어떤 경향들에 결부되어 있는 현재성의 성격을 재발견할 수 있는 소설로 돌아감으로써 재정의 되어야 한다."(22-4)
『프랑켄슈타인』의 탄생배경에 주목해보자. 1816년 6월, 퍼시 셸리와 메리 그리고 그녀의 이복 누이동생 클레어 클레어먼트는 당시 레만 호숫가 빌라 디오다티에 체류 중이던 바이런 경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들은 여기에서 "초자연적인 콩트를 써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25).
『프랑켄슈타인』은 "작가의 사생활의 상처"와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메리의 출산에서 비롯된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죽음은 메리에게 죄책감을 낳게 하는데, 소설 속에서는 엘리자베스의 병이 빅터의 어머니가 죽게 되는 간접적인 이유로 묘사되고 있다. 빅터가 자신의 흉칙한 창조물을 포기하는 것은,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에게서 버려진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의 처지를 상기시킨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얼마 되지 않아 재혼하며, 자신의 지적 형성에만 관심을 둔 채 딸에게는 별반 애정을 보이지 않는다. 이 작품을 집필할 당시 메리 셸리는 이미 어린 딸을 잃은 경험을 간직하고 있기도 했다. "이렇게 자전적인 삽화들이 일련의 비극적 죽음들로 강조되는 소설의 몇몇 병적인 측면들을 설명한다."(27-9)
『프랑켄슈타인』이 현대의 신화가 된 데에는 "시각성으로의 이행"이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다. 우선 연극에서 시작하여 이후 영화에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40). 프랑켄슈타인을 다룬 영화들 중에는 "그 시대의 미국 상황과 관계가 있는 상징적인 다양한 형상화"의 흔적들이 엿보이기도 한다. "경제적 위기와 그것이 야기한 사회적 갈등, 노동조합의 탄생, 뿐만 아니라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주의" 등이 그것이다. 또한 부르주아의 눈에 비친 노동자의 형상, 위협적이고 침략적인 외국인, 혹은 더 나아가, 더 은밀하게는 종종 폭력과 성적 위협에 연관되는 흑인"을 표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해피엔드'라는 할리우드적 법칙에 충실하게 결론이 난다."(49-50) "꼼꼼하게 재구성된 빅토리아 양식의 배경"의 의해 특징지어지는 영화들도 있다. 그 작품에서 "부르주아적 정상성은 […] 남작 집의 부유한 우아함, 세련된 가구, 은그릇, 그림 등으로 표현된다. 이 특징은 우아한 드레스와 정숙한 말들과 함께 순응주의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약혼녀 엘리자베스의 존재로 강조된다."(58)
4. "유산의 해석: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가진 프랑켄슈타인" (막스 뒤페레 Max Duperray)
젊은 메리는 왜 하필 "프로메테우스라는 시적 모델"을 택했을까. 그는 당시 "낭만주의자들의 반항아적인 야망을 반영하는 상상적인 원형"이었다(81). 괴테와 셸리는 프로메테우스를 통하여 "신성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제시하는 예술가의 상"을 그렸다(82). 그러나 예술가의 창조성은 "교육의 힘"에 의해 길들여진다. "괴물이 가는 길에 고대 건국 시조들의 이야기인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두었던 신의 섭리"를 보라(81-3).
프로메테우스 신화에는 다양한 측면들이 있다. 헤시오도스의 판본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게 바쳐질 제물을 분배하면서 제우스를 속였고, 제우스는 데우칼리온 홍수 후에 살아남은 마지막 인간들을 절멸시키기 위해 불을 빼앗지만, 프로메테우스는 그것을 다시 훔쳐 낸다." 또 다른 전설에서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친 자이기도, 불을 제공한 자이기도 하다. "신화 속의 타이탄은 인류의 숭고한 창조자이자 아버지이지만, 또한 신의 특권을 불명예스럽게 횡령한 자이기도 하다."(84-5)
메리의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해석은 모호한 데가 있다. "그녀가 의심을 피하기 위해 도덕주의적이고 풍자적인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반란을 일으키려는, 월터 휘하의 선원들에게 그는 "모순적인 충고"를 한다. "우리는 메리 셸리가 어떤 자기 검열을 하지 않았는지 의심스럽다." 다시 말해 "그녀는 프로메테우스를 '리얼리즘 문학의 신화'로 만듦으로써 낭만주의적인 숭고미의 작동을 지연시킨다." "야망의 위대성에 대한 깊은 존경과 동시에 야망을 체현하는 자들에 대한 불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총괄적인 지식을 끝까지 추구하지 못 한다." 이것은 "프로메테우스적 유전형질을 크게 변모시키는 것"이다. 결국 "프랑켄슈타인의 무능력이 문제다."(85-7)
메리 셸리는 "반복되는 장례식의 충격—그녀는 소설 초판을 교정하는 몇 년 사이에 남편과 아이들을 잇달아 잃는다—"을 겪는다. "재료들의 혼합에 의한 탄생은 자식의 '죽은 몸' 즉, 알 수 없는 공간 속에 아무런 의미 없이 내던져진 '사고무친'의 존재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때문에 작품 속에서 명시적으로 보여지는 "그의 수사(修辭)를 불신해야 한다."(96-7)
『프랑켄슈타인』의 "오이디푸스적 함의" 또한 지적할 수 있다. "항해자의 모험"에서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인간의 발이 닿은 적 없는 처녀지를 향해 모강(母江)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가리킨다. "어쩌면 북극을 향한 퇴행적인 여행 자체가 잃어버린 어머니 세계로의 회귀라고 이해해야 할지도 모른다."(97)
"소설이 축조한 정신적 세계 속에서 오이디푸스는 프로메테우스를 대체한다. 그리고 오이디푸스와 함께 지식과 그것을 위협하는 금지 사이의 완전한 변증법이 다시 나타난다." 그것이 "메리 셸리가 취한 모호한 입장"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다(97-8).
5. “괴물 프랑켄슈타인에겐 신분증이 없었다” (장-자크 르세르클 Jean-Jacques Lecercle)
프랑켄슈타인은 너무나 선량하다. “이 감동에 싸인 영혼, 친환경주의자이며 채식주의자이기도 한 이 고독한 산책자가 어떻게 흉악한 괴물일 수 있을까?” “할리우드식 공포 영화가 요구하는 추함의 기준”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그리하여 “괴물의 괴물성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102-3)
프랑켄슈타인의 고독은 “존재론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 “괴물을 괴물로 만드는 것, 그것은 그에겐 신분증이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이 신분증이라는 문서를 좀처럼 읽으려들지 않는다. 권력의 대변인에게 공손하게 내밀기만 하는 것이다.” 이 신분증으로 인하여 “개체의 지위에서 주체의 지위로의 이행”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신분증에는 출생 일자, 출생지, 국적, 거주지, 증명사진과 서명, 그리고 몇 가지 관인 등의 정보가 기입돼 있다. 가히 “신분증을 개인에 대한 정보를 담는 지도”라 일컬어도 터무니없는 일이 아닐 것이다(104-5).
“괴물이 빅터에게 약혼녀를 만들어달라고 끈질기게 간청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프랑켄슈타인이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방법은 “가정을 이루는 것”일 터인데, 이 가정의 부재로부터 비롯된 상실감이 그의 “첫 번째 살인의 동기”가 된다. 꼬마 윌리엄은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아들, 권리의 승계자”였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
“징그러운 괴물아! 어서 놓으라니까. 우리 아빤 의원님이야, 프랑켄슈타인 의원님, 아빠가 가만 안 둘걸. 넌 날 놓아줘야 할 걸.” “프랑켄슈타인! 그렇다면 넌 내 원수로구나. 난 프랑켄슈타인에게 영원한 복수를 맹세했지. 네가 그 첫 번째 희생자다.”
“‘hideous monster! Let me go. My papa is a syndic—he is M. Frankenstein—he will punish you. You dare not keep me.’ “‘Frankenstein! You belong then to my enemy—to him towards whom I have sworn eternal revenge; you shall be my first victim.’(122)
신분증은 개인을 “주체로 호명”하며, 호명 담론들은 “수행적(performatifs)”이다. 다시 말해 ‘언어’는 “가공적인 준(準)현실”을 창조해낸다. 이 언어적 체계 밖으로 내쫓김을 당한다는 것은 곧 “정체성의 결핍”을 의미하게 된다.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은 “태어나지 않은 자(unborn)”, 즉 “존재할 수 없는 자, 허구의 무책임성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자”에 다름 아니다. “괴물의 괴물성은 단지 사회적인 것이 아니다. 우선 그것은 언어적인 것이다.”(110-2)
5. 해럴드 블룸의 발문(跋文)
해럴드 블룸에 따르면, 리처드 처치와 뮤리얼 스파크(Richard Church and Muriel Spark)는 몬스터와 창조자가 "단일 존재의 대조적인 반쪽들"(the antithetical halves of a single being)이라고 주장한다. 빅터는 "감정"(feeling)을, 이름 없는 피조물은 "지성"(the intellectual)을 각각 대변한다. 그런데 몬스터가 "무성적"(asexual) 존재라는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는 빅터에게 단지 "동료의식"(companionship)을 위해 신부를 요구하는 것이다. 낭만주의 문학과 그것의 특징적 신화의 맥락에서 "자아의 그림자 혹은 더블"(the shadow or double of the self)은 빈번하게 언급되는 요소이다(HB 200).
『프랑켄슈타인』의 착상 과정에서 스위스의 알프스는 중요하다. P. B. 셸리에 따르자면, 그것은 "진정한 숭고미"(the true sublime)를 가지고 있다. "일정하지 않은 우아함과 사랑스러움"을 그 속성으로 하는 숭고미는 "인간의 감각 범위를 초월한다."(HB 203)
블룸은 몬스터가 화자로 등장하는 11장-16장이 "이 소설의 가장 최고의 업적"이라고 추켜세운다. 거기에는 "자연인의 위엄"(the dignity of natural man)이 서려있다. 키츠(Keats)의 용어로는 "사심없음의 양극적 이상"(polar ideal of disinterestedness)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특질은 "영웅적 파토스의 숭고한 구현"(a sublime embodiment of heroic pathos)의 함의를 띤다(HB 206).
6. 텍스트 주요구절 발췌
"창조주여, 제가 부탁했습니까, 진흙에서
저를 빚어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절 끌어내 달라고?"
Did I request thee, Maker, from my clay / To mould me Man, did I solicit thee / From darkness to promote me? — Paradise Lost, Ⅹ, 743-45
나는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세상의 한 부분을 보면서 목마른 호기심을 실컷 충족시키고, 지금껏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땅에 내 발자국을 남기게 될 것이다. 이것들이 나에겐 커다란 유혹이며, 그 유혹은 온갖 위험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잠재울 만큼 크다.
I[Walton] shall satiate my ardent curiosity with the sight of a part of the world never before visited, and may tread a land never before imprinted by the foot. These are my enticements, and they are sufficient to conquer all fear of danger or death.(1-2)
그가 공감해주면 나는 쉽게 감동해서 내 마음 속의 말을 털어놓았고, 내 영혼의 타오르는 열정을 드러냈으며, 또 몸이 달아오를 정도로 열렬하게,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면 나의 부와 나의 존재, 나의 모든 희망을 기꺼이 희생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추구하는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또 우리 인간에게 적대적인 그 영토를 손에 넣어 후손에 전해줄 수 있다면 한 인간의 생사는 사소한 대가일 뿐이라고 말이다.
I[Walton] was easily led by the sympathy which he[Victor] evinced to use the language of my heart, to give utterance to the burning ardour of my soul, and to say, with all the fervour that warmed me, how gladly I would sacrifice my fortune, my existence, my every hope, to the furtherance of my enterprise. One man's life or death were but a small price to pay for the acquirement of the knowledge which I sought, for the dominion I should acquire and transmit over the elemental foes of our race.(12)
나는 이들의 장난감이자 인형이었고 그 이상의 존재였다. […] 어린 시절 내가 시간마다 인내와 자선심, 자제력을 쌓기 위한 수업을 받아야 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완전한 듯하지만 한 가닥 즐거움이 빠진 비단 노끈으로 인도되었던 것이다.
I[Victor] was their[his parents] plaything and their idol, and something better […] it may be imagined that while during every hour of my infant life I received a lesson of patience, of charity, and of self-control, I was so guided by a silken cord that all seemed but one train of enjoyment to me.(19)
나에게 세계란 밝혀내고 싶은 하나의 비밀이었다. 호기심, 숨겨진 자연의 법칙을 알아내기 위한 부단한 연구, 드디어 그 법칙이 내 앞에 펼쳐졌을 때의 날아갈 듯한 기쁨, 이런 것들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감정들이다.
The world was to me a secret which I[Victor] desired to divine. Curiosity, earnest research to learn the hidden laws of nature, gladness akin to rapture, as they were unfolded to me, are among the earliest sensations I can remember.(22)
고백하지만 언어의 구조나 정부의 관례, 다양한 국가의 정치학 같은 것들은 흥미가 없었다. 내가 알고 싶어 했던 것은 하늘과 땅의 비밀이었다. 그것이 사물의 외면적 실체가 되었듯 자연의 내면적 정신이 되었든, 또는 날 점령하고 있는 신비한 영혼이 되었든, 내가 품었던 질문들은 형이상학적인 것, 또는 고차원적 의미에서 세계의 물리적 비밀에 관한 것이었다.
I[Victor] confess that neither the structure of languages, nor the code of governments, nor the politics of various stated possessed attractions for me. It was the secrets of heaven and earth that I desired to learn; and whether it was the outward substance of things or the inner spirit of nature and the mysterious soul of man that occupied me, still my inquiries were directed to the metaphysical, or in its highest sense, the physical secrets of the world.(23)
제발, 프랑켄슈타인, 다른 사람한테는 잘해주면서 나만 짓밟지 말아주시오. 나는 당신의 정의를, 당신의 너그러움과 애정을 받아야 마땅하오. 당신의 피조물이잖소. 나는 당신의 아담이어야 했건만 타락한 천사가 되었고, 당신은 아무 죄도 없는 나를 기쁨에서 몰아내었소.
Oh, Frankenstein, be not equitable to every other and trample upon me[the monster] alone, to whom thy justice, and even thy clemency and affection, is most due. Remember that I am thy creature; I ought to be thy Adam, but I am rather the fallen angel, whom thou drivest from joy for no misdeed.(81)
그 놀라운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소. 인간이란 그렇게 강인하고 덕과 품위를 지녔으면서도, 그렇게 악하고 비열한 존재란 말인가? 어떤 때는 사악한 원리의 소산인 듯하다가도 어떤 때는 우아하고 신과 같은 존재로 비쳐지기도 했소.
“These wonderful narrations inspired me[the monster] with strange feelings. Was man, indeed, at once so powerful, so virtuous, and magnificent, yet so vicious and base? He appeared at one time a mere scion of the evil principle and at another as all that can be conceived of noble and godlike.(100)
아담처럼 나는 실재하는 어떤 존재와도 전혀 연관이 없었소. 그러나 그의 위치는 모든 면에서 나와 전혀 달랐소. 그는 완벽한 피조물이었고, 신의 손에서 태어난 행복하고 창창한 존재였으며 창조주의 특별한 보살핌으로 인도되었소. 그는 고등한 존재와 대화하며 지식을 얻었지만, 나는 흉측하고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혼자였소. 내 상황에 맞는 상징은 오히려 사탄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소.
Like Adam, I[the monster] was apparently united by no link to any other being in existence; but his[Satan's] state was far different from mine in every other respect. He had come forth from the hands of God a perfect creature, happy and prosperous, guarded by the special care of his Creator; he was allowed to converse with and acquire knowledge from beings of a superior nature, but I was wretched, helpless, and alone. Many times I considered Satan as the fitter emblem of my condition.(110)
내가 할 일은 거의 끝났소. 나의 존재를 완성하고 해야 할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신이나 다른 인간이 죽음이 아니라 나 자신의 죽음이 필요하오. 내가 이 마지막 희생을 미룰 거라고도 생각하지 마시오. 내가 타고 온 얼음장을 타고 당신 배를 떠나서 지구의 북쪽 끝까지 갈 생각이오. 거기서 화장용 장작을 모아서 이 비참한 육체를 재로 태우겠소. 어떤 호기심 많고 불경스러운 못난이가 나와 같은 존재를 다시 만드는 일이 없도록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을 테요.
My[the monster's] work is nearly complete. Neither yours nor any man's death is needed to consummate the series of my being and accomplish that which must be done, but it requires my own. Do not think that I shall be slow to perform this sacrifice. I shall quit your vessel on the ice raft which brought me thither and shall seek the most northern extremity of the globe; I shall collect my funeral pile and consume to ashes this miserable frame, that its remains may afford no light to any curious and unhallowed wretch who would create such another as I have been.(197)
References:
셸리, 메리. 『프랑켄슈타인』. 오숙은 역. 미래사, 2002.
뒤페레, 막스. 「유산의 해석: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가진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 메네갈도, 질. ed. 이영목 옮김. 이룸, 2004[1997].
르세르클, 장-자크. 「괴물 프랑켄슈타인에겐 신분증이 없었다」, 같은 책.
레비, 모리스. 「이 괴물은 어디서 왔는가?」, 같은 책.
메네갈도, 질. 「괴물은 여전히 어슬렁거리고 있다」, 같은 책.
카리에르, 장-클로드. 「악령을 쫓는 방법의 선택」, 같은 책.
Shelley, Mary. Frankenstein. New York: Signet Classics, 2000.
Bloom, Harold(HB). "Afterword", ibid, 1965.
James Miller, Walter(JM). "Foreword: The Future of Frankenstein", ibid, 2000.
frankenstein_presentation.hwp
# by | 2008/09/21 22:04 | 영국근대소설(의학/신체) | 트랙백(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여성들의 새로운 실험공간, SF
급진적 미래를 꿈꾸다 아나키스트나 페미니스트들과 같이 각종 권위와 권력, 그리고 그에 기반을 둔 사회구조 자체를 의심하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논리적 대안 없이 비현실적인 주장만 해대며 걸어 다니는 모순덩어리’ 혹은 ‘불가능한 저항만을 계속하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구조 속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을 담고 있는 구조를 뒤흔드는 시도를 하려는 이들에게 ‘걸어 다니는 모순덩어리’와 같은 명찰은 불명예스러운 것이......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