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02일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정윤철의 <슈퍼맨이었던 사나이>_김영진(372․373호)
슬쩍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의 편집과정을 엿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라는 교과서의 정의가 이 영화에도 딱 들어맞는다. 몇 개의 장면을 넣고 빼느냐에 따라, 몇 개의 컷을 더 집어넣느냐에 따라 영화의 전체 리듬과 정서의 방향이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30)
불과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정윤철은 몇 개의 편집본을 갖고 줄다리기를 했다. 배급사에서는 끊임없이 모니터 시사를 열었고, 정윤철에게는 평범한 대중들을 대변한다고 하는 모니터 요원들의 지적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관계자들의 요구사항이 들어왔으며, 그는 자신의 직관과 대중의 요구라고 하는 것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았을 것이다. 너무 많은 요구와 감독 개인의 욕심 사이에서 첫 기자시사회 편집본은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형태로 나왔다.(30)
장애자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휴먼스토리의 소재를 취한 <말아톤>에서 사람들을 감동시킨 건 소재에 충실한 연출 덕분이 아니었다. 이 영화에서 정윤철의 관심은 주인공이 품고 있는 판타지를 어떻게 달리기의 즐거움과 일체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아프리카 초원을 뛰어다니는 얼룩말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다. 정윤철은 그 마음을 찍는다. 주인공이 달릴 때 화면에는 그의 꿈을 실제화시킨 판타지 장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달릴 때의 환희를 감각적으로 포착한 일련의 장면들이다. 영화 중반 한강공원을 주인공이 달리며 훈련할 때 그의 가슴과 손과 발에서 느껴지는 환희를 시청각적으로 감각하게 한다.(30-32)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서 그[이현석]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근심과 야심을 말할 때 화면은 수시로 그의 판타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라는 명제는 여기 해당되지 않는다. 관객은 금방 그의 판타지가 현실의 초라한 광경으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된다. 그가 꿈꾸는 판타지가 현실이 될 수 있느냐 여부는 이 영화의 주된 관심사다. 그게 판타지인지 현실인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판타지에 얼마나 접속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 이것은 한 인간의 갱생 드라마가 아니라, 그 인간에게 다른 멀쩡한 인간들이 동화되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32)
영화 속의 한 장면에서 전지현이 연기하는 송수정 PD는 미치광이 슈퍼맨을 취재하다가 그의 집에 가보기로 한다. 얼토당토않은 그의 헛소리에 적응되지 않던 그녀의 심경에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철거 직전의 아무도 살지 않는 아파트촌 옥상에 그 남자가 일궈놓은 녹색정원을 보고 나서다. 폐허에 가꾼 자기만의 공간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면서 남자는 북극을 살리겠다는 투로 허무맹랑한 말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슈퍼맨임을 증명하려는 듯 옥상 난간에 올라가 하늘을 나는 듯이 행동한다. 송 PD는 질겁해 그를 말린다. 물론 그는 하늘을 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다. 다음 단락에서 환경 집회에 참여한 우리의 슈퍼맨이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날아가려는 자세를 취할 때 역시 송 PD는 질겁하지만, 그의 몸을 떠받들어 옮겨주는 사람들 덕분에 그는 날개를 달지 않고도 날수 있는 상태가 된다. 여기서 감독은 그 현실의 자그마한 기적을 곧바로 판타지로 이어 붙인다. 그들은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며 일장춘몽이지만 현실을 초극한 슈퍼맨과 그의 친구가 된다.(34)
superman.hwp
# by | 2008/02/02 18:26 | 영화잡지 | 트랙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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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공식홈페이지 3년째 방송용 휴먼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송수정 PD는 자기가 다루는 프로그램 내용과는 달리 인간에 대한 환멸과 실망으로 가득한 골초 노처녀. 팍팍한 일상에 질려버린 수정은 밀린 월급 대신 촬영용 카메라를 집어들고 나와 자연다큐를 찍으러 아프리카로 가려 하지만 현지에 가 있던 촬영팀에게 사고가 생기는 바람에 좌절하고 만다. 앞으로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수정은 우연히 날치기에게 카메라를 도둑맞고, 다른 시민들이 모두 못본체하는......more